나만이 걸어온 그 길(17)-정명석 선생님의 위대한 삶다릿골 기도굴에서 깨달은 진리:인간 창조와 타락의 비밀다릿골 기도굴에서 깨달은 진리 :인간 창조와 타락의 비밀
∥걱정과 고민들로 인해 시작한 기도∥
10대 초반에 초등학교를 다닐 때 나는 무척 생각이 많았다. 걱정과 고민들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고생이 많을 때마다 나의 생각은 더 깊어만 갔다. 잘 먹고, 잘살고, 좋은 환경과 좋은 집에서 살았다면 아마도 그렇게 생각이 깊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은 지금 누가 가 보아도 인정하는 첩첩산중이다. 나는 인생을 살면서 머리가 아프고 골치가 아플 때마다, 높은 산으로 기어 올라가 봉우리에 쭈그리고 않아 명상도 하고 기도도 했다. 어느 날은 인생을 한(恨)하면서 울며불며 소리를 지르며 기도했다. 그러면 나의 심령의 먹장구름은 잠시나마 사라졌다.
이렇게 밤이 깊도록 기도하고, 해가 뜨면 계곡에 들어가 열매를 따 먹고, 낮에는 성경을 읽고, 밤이 되면 또 굴에 들어가 희미한 호롱불을 켜 놓고 개인과 가정, 민족, 그리고 세계를 위해 기도했다. 실상 내 자신은 배고픈 환경 속의 초라한 존재였지만 하나님을 알고 인생의 허무함을 알았기에 무지 속에서 하나님을 모르고 시는 자들이 더욱 불쌍하였다. 그래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지구촌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 것이다. 15세 때부터 산(山)기도를 시작하여 굴속에서 기도하고, 대둔산 용문골 절벽 위에서 기도하며 보낸 시간들은 어언간 수십 년이 흘러가게 되었다. 영하 15도 이하의 추위도 결사적인 집념과 행동으로 이겨냈다.
∥나만의 기도 장소, 다릿골 기도굴∥
21년간 수도 생활을 하며 전국으로 다닌 곳도 많지만, 깊이 묻혀 기도한 곳은 몇 군데이다. 그중 하나가 내 고향의 다릿골 기도굴이다. 이곳은 1905~1945년 일본이 통치하던 기간에 금을 캐기위해 파 들어가 광산으로 쓰던 굴이다. 깊지는 않지만 외부 사람들을 피해 기도하며 책을 볼 수 있는 조용한 굴이라서, 나만의 기도 장소로 이용했다. 지금은 내 뒤를 따르는 자들이 나를 대신하여 그 자리에서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기도 한다. 그 굴에 제자들이 너무도 많이 오고 가서 굴이 닳고 닳았다. 다릿골 기도굴은 내가 살고 있는 시골집에서 약 1.5km 떨어진 굴이라, 낮에 일을 하고 가도 부담이 없는 거리였다. 온종일 피곤하게 일하고 씻고 닦고 저녁을 먹은 후 기도하러 가기에 거리상 좋았다. 늘 나무하러 다니던 산이기 때문에 밤에도 무섭지 않고 정신적인 부담도 별로 없었다. 광산은 금이 나오지 않아 오래 전에 철거되었기 때문에 나만이 다니는 길이 되었다. 그믐밤이든 달밤이든, 비바람이나 눈보라 치는 밤이라도 더름거리지 않고 뛰어다닐 정도로 익숙해진 나의 길이 되었다.
나의 수도 생활에 있어서도 뜻이 얽힌 곳, 이 다릿골 기도굴에 기도하러 다니기 시작한 때는 45년 전보다도 더 오래돼서 어느 해인지 잘 알 수 없고 날짜는 확실히 모르지만, 내가 장본인이니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기억하고 있다. 다릿골 기도굴에서 '창조 목적'과 ‘타락론’ 등 각종 말씀을 배웠다. 성자로부터 배웠다. 그곳에서 세상 누구에게도 배우고 들은 적이 없는 에덴동산의 선악과와 생명나무, 아담과 하와의 타락에 대해 배우고 감탄하여 손이 깨져 피가 나도록 바위를 쳤다. 과거 기독교에서 알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마치 등불과 태양빛같이 차이가 있는 진리였다. 성자는 나사렛 예수님의 모습으로 흰옷을 입고 나타나셨고, 나는 앉아서 배우기도 하고 서서 배우기도 했다. 굴속이라 어두워서 큰 병에 기름을 넣고 호롱을 만들어 불을 켰다.
∥창조의 비밀, 타락의 비밀을 풀다∥
1970년 초봄, 아직 찬바람이 불고 산골짝의 바위에 흘러내리던 물이 얼어붙어 바위가 허옇던 때였다. 성자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깨달으니 어떤 고생을 해도 절대 성자의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매일 옆에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 기도할 때 어쩌다 한 번씩 모습을 보여 주시며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주신 후 떠나시고 그러고는 오랜만에 다시 나타나시곤 했다. 또 기도하면 보이지는 않고 깨닫게 해 주시어 마음으로 성자의 말씀이 들려왔다. 그즈음 나는 창조의 비밀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창세기 2장8절부터 17절까지를 읽고 선악과와 생명나무에 관한 의문을 풀지 못해, 이것을 알고자 오래전부터 기도하며 몸부림을 쳐 왔다. '선악과와 생명나무! 이것은 과연 무엇을 두고 말했을까? 오늘날에는 그 나무와 열매가 없는 것인가?' 하고 궁금해하며 하나님, 성자, 성령님께 묻고 성경의 수백 군데를 다 뒤지며 기도했었다. 선악과에 대한 궁금증에 사로잡혀 기도한 것은 그때가 18년째 되는 때였다. 흔히 일반 목사들이 말하듯 "무조건 믿지, 뭘 알고 믿으려고 하느냐?" 하는 식의 신앙이었더라면 이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생명나무와 선악과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성경의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해 놓고 사람을 창조하신 다음에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와 생명나무를 만드셨다. 그리고 그것을 그렇게 중요하게 강조하시며 지구상에 자기가 창조한 사람까지도 그것만큼은 절대 못 따 먹게 말씀한 내용이 나온다. ‘아니, 그것이 무엇이기에 하나님이 최고로 귀하게 창조한 사람까지도 그걸 못 먹게 했냐?’ 나는 정말로 궁금했다. 예수님은 '생명'을 두고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평가했는데, 그것을 따 먹으면 생명을 잃게 된다고 말씀했으니 그놈의 과일이 사람보다 귀하냐는 의문이 들었다. '세상에 사람보다 귀한 과일이 있을까? 법칙상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하고 나는 깊은 경지에 들어가 생각하기도 했다. '하나님은 사람보다 선악과를 귀하게 여긴 것일까?` 의문스러웠던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왜 선악과를 귀하게 여기시냐고 물어보았다. 요즘 말로 ‘어림 반 푼어치도 안 되는 말’이었는지 대답이 안 왔다. ‘하나님은 왜 자기가 귀히 창조한 자들이 따 먹으면 죽을 과일을 만드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이치에 안 맞는 일이었다.
과일을 따 먹고 타락되어 온 인류가 하늘의 미움을 받게 되고 저주를 받는 후손들로 남게 되었으니, 이 선악과에 대한 성경 내용을 알면 궁금하게 생각지 않을 자가 없다. 정말 성경을 믿는 자라면 모두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창세기 3장 16절에는 선악과를 따 먹은 후 잉태하는 고통을 받게 되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선악과를 따 먹은 후 잉태하는 고통이 왔다? 세상의 어떤과일을 먹으면 임신이 될 수 있을까? 궁금했다. 현 세상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먹으면 임신이 되는 과일은 없다. 고로, ‘잉태’라고 말한 것을 보면 분명 이성적(異性的)인 단어임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분명 비유의 단어겠구나!' 하고, 창세기 2장 8절 이하를 두고 깊은 경지에 빠져서 오랜 기간 동안 기도하던 가운데 결국 깨닫게 된 것이다.
창세기 2장 8절 이하를 보면 생명나무와 선악과가 나오고, 아담과 하와 이야기, 즉 남자와 여자 이야기가 나온다. 먼저 인간을 나무로 비유한 것을 깨닫고 "이것이다! 생명나무는 아담을 가리켜 비유한 것이구나." 했다. 그리고, 남녀가 이성적 행위를 할 때 잉태됨을 3장 16절에서 말했으니, 2장 17절의 '먹으면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가 창조한 자들에게 이성의 법을 정해 놓고 그 법을 지키지 못하면 영적으로 볼 때 죽는다고 표현을 한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나는 이것이 틀림없다고 굴속에서 고함을 지르면서 외쳤다. 가정에서도 어린 자녀의 이성 관계는 부모가 엄히 다루고 있다. 그와 같이 하나님도 그러하셨다는 영감과 감동이 나에게 크게 부딪혀 왔다. '아! 선악과는 하와를 말하고, 생명나무는 남자 곧 아담이구나!' 하며, 생명나무와 선악과가 이렇게 상식적인 단어임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서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라 했고,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라고 했다. 곧 에수님을 후(後)아담이라 칭했다. 또, 요한계시록 22장 14절을 보면 생명나무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신학에서는 여기의 생명나무를 예수님이라 한다. 예수님을 가리켜 생명나무로 비유한 것이다. 고로, 전(前)아담인 에덴동산의 아담을 생명나무로 칭했음이 틀림없고, 아담 앞의 하와는 선악과로, 혹은 선악을 구분하는 열매로 칭했음은 어디갈 데가 없는 확실한 말씀이다. 또한, 여자의 한 지체를 선악과라는 금단의 과일로 표현했음을 깨달았다. 성경 아가서에서는 솔로몬이 여자의 지체를 들어 여러 가지로 비유했다. 얼굴은 달로(아6:10), 목은 망대로(아7:4), 유방은 쌍태 노루 새끼로(아4:5), 다리는 성전 기둥으로(아5:15). 키는 종려나무로(아7:7), 배꼽은 포도주를 부은 잔으로(아7:2), 허리는 꼭 묶은 밀단으로(아7:2), 눈은 연못으로(아7:4), 입술은 홍색실로(아4:3), 뺨은 석류로(아4:3) 비유했다. 고로, 창세기에서 여자지체를 과일로 비유함은 마땅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깨닫고 굴에서 나올 때 동쪽산에 막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 ‘저 찬란한 빛이 어두움을 모두 물러가게 하는 태양빛이 분명하듯, 내가 깨달은 진리 또한 분명히 맞다. 선악과도 생명나무도 분명 사람을 두고 말했음이 틀림없다.’ 라고 번갯불이 치듯 내 머리에 영감이 와닿았다. 나는 너무 감격해 주먹으로 땅을 치고 바위를 치며 기뻐했다. 그리고 성자를 부르며, "주님! 저기 지금 떠오르는 것이 태양이 맞죠? 이와 같이 '선악과'는 하와의 몸이고, 축소해 보면 하와의 성적 지체입니다. 또 ‘생명나무’는 아담의 몸이고, 축소해 보면 아담의 성적 지체가 맞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때 "맞다, 이제 알겠느나? 메시아인 내가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믿지 말고, 앞으로 세상에 나가 이 복음을 전할 때 그 누가 아니라고 해도 너는 맞다고 하며 하나하나 이해시키며 가르쳐라." 하는 음성이 와닿았다. 때는 1970년 3월 초였다.
∥18년 만에 깨달은 태양 같은 진리를 전하다∥
그때부터 내가 평소 눈으로 보아 온 남녀 관계에 대한 모든 것을 통해 더 깨달아 확신을 얻게 되었고, 성서에서도 그런 쪽의 말씀을 찾게 되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간음하다 하루에 2만3천 명이 죽었고(고전10:8, 민 25:1-9), 소돔 땅은 음란으로 인해 심판을 받았으며, 창세기 6장을 보면 노아 때 홍수 심판의 원인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허락지 않은 사랑을 할 경우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과 영원히 함께하지 않는다고 했다(창6:1-3). 유다서를 보면 천사가 타락한 것도 이성적 타락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유1:6~7). 이같이 성서에서 보듯 타락의 근본은 이성(異性) 죄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내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있을 때 이성적으로 아예 개방되어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1차, 2차 파월 기간 3년 동안 이성으로부터 지켜 주신 기적, 이는 절대적인 뜻이 있었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다. 다릿골 기도굴, 거기에서 기도하며 깊은 경지에 도취해 이 비밀을 깨달았다. 이 의문스런 문제를 깨달으려 겸비하기로 결심한 때로부터 18년이 흘러간 후 깨닫게 된 것이다. 창세기 2장 8절에서 17절까지의 의문에 대해 깨달은 때는 한 날에 깨달은 것이 아니라서 정확한 날짜는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이 의문에 대한 답은 한 역사 기간을 두고 깨달은 태양 같은 진리, 빛의 말씀이었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 깨닫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설한풍에 생화 송이를 보는 것같이 힘들고 어려웠다. 눈 덮인 벌판에 향기 나는 꽃이 있다면 그 얼마나 기쁘고 신기하겠는가! 누구든지 신기해하고 기이함을 느낄 것이다. 나도 이 진리를 깨닫고 그와 같은 기쁨을 맛보았다. 나를 가르치신 성자는 이 모든 것을 천하의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간직하라고 엄명하셨다. 그리고 "오직 이 복음을 전할 때가 오면 나의 명을 받고 전해라." 하셨다. 이에 따라, 1978년부터 새 시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 이 진리도 함께 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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