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목사님의 ‘시대말씀’-하나님의 섭리역사의 길(9)

(9)책임 분담의 역사

jsmagazine.net | 기사입력 2024/02/18 [19:40]

정명석 목사님의 ‘시대말씀’-하나님의 섭리역사의 길(9)

(9)책임 분담의 역사

jsmagazine.net | 입력 : 2024/02/18 [19:40]

(9) 책임 분담의 역사

 

▲     ©jsmagazine.net

 

 하나님은 인간을 책임 분담의 존재로 창조하셨다.

 

1) 성경에 나오는 인간의 책임 분담

 

아담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인류를 성장시키시고, 아담과 하와를 택하여 '사랑의 뜻'을 이루고 그 자손들도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이루며 살게 하려 했는데, 아담과 하와가 책임을 못 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뜻이 깨졌다.

 

 함은 노아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 이후 함은 노아를 악평함으로 책임을 못 하여 저주를 받게 되었다. 하나님이 노아를 통해서 저주한 것이다. 최종 심판자는 하나님이시다.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첫 번째에는 하나님 앞에 제대로 제사를 드리지 못했다(창세기 15:10). 그러나 두 번째로 아들 이삭을 제대로 드려 기어이 행했다(창세기 22:1-14). 즉 책임을 한 것이다. 이에 그 제사는 열납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되었다.

 

▲ 모리아 산의 아브라함과 이삭 /이미지 : Daum   

 

가나안 악평자들

 모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모세를 따라서 400년의 이집트 종살이를 마치고 신광야로 나왔다. 그러나 신광야로 나온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모세와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악평하며 불평불만 했다. 그랬어도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가나안 복지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그 마지막 기회는 열두 족장들을 대표로 뽑아 가나안 땅을 직접 정탐해 보고 와서 백성들에게 말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열두 명 중 열 명의 정탐자들은 가나안 땅을 직접 보고 왔어도 불평하며 백성들에게 부정적으로 말했다. 고로 그들과 그 말을 듣고 불평하고 악평한 자들은 마지막 기회를 잃었다. 하나님은 그들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을 금하셨다. 이에 그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형벌을 받다가 죽었다. 결국 가나안을 악평했던 자들은 책임을 못 하여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했다.

 

<민수기 14: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사울

-첫 번째 실수 (사무엘상 13):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블레셋은 또 이스라엘을 치려고 모였고 그 군사력은 막강했다. 이에 사울이 이끌던 이스라엘 군대는 굴, , 바위틈, 웅덩이에 숨거나 길르앗 땅으로 도망쳤다. 길갈에서 사울을 따르던 이스라엘 군대는 두려워하고 있었고 사울에게서 점점 흩어지고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때 하나님께 간구하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 시급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레의 기한을 정하고 자신을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사무엘이 오는 것이 늦어지자, 사울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선지자가 할 일을 자기가 한 것이다.

 

-두 번째 실수 (사무엘상 15) :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가 없다고 스스로 번제를 드렸다가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사울은 그 후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행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를 당장 내치지 않으시고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다시 한번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에게 가서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주신 은혜를 상기시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권면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 길을 훼방했던 아말렉 족속을 가서 치고, 그들의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사울을 통해 악한 아말렉 족속을 심판하고자 하셨다. 고로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에게 전리품을 하나도 취하지 말고 모두 진멸하라고 했다.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아말렉 왕을 치지 않고 포로로 잡았으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진멸하라고 하셨지만 기름진 양과 소는 진멸하지 않고 취했다. 이방인의 부정한 것을 하나님께 제사 드린다고 가지고 온 것이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기회를 주었으나 사울은 재물에 욕심을 부림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불순종했다. 결국, 사울은 책임을 못 해 촛대가 다윗에게 옮겨졌다.(사무엘상 16:1)

 

(이미지 출처: Daum 이미지)

 

요시야

 요시야왕은 자기의 최고 고민인 국방 문제를 해결해 줄 자가 느고왕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를 못 믿어서, 느고왕이 보낸 군대와 싸웠다. 그러다 느고왕의 군사가 쏜 화살에 맞고 죽었다(역대하 35:16-27). 이는 결국, 요시야가 책임을 못 했기 때문이다.

 

나아만 장군

 예수님께서 설교 때 "엘리사 시대 때에 문둥병자가 많지 않았느냐? 그런데 나아만 장군만 자기 책임을 다하여 낫지 않았느냐?" 하시며 인간의 책임에 대해 말씀하셨다(누가복음 4:27).

나아만 장군은 아람 사람이다.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으로 크나큰 직위를 가지고 있었는데 문둥병에 걸려서 참으로 고민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아주 하찮은 계기를 통하여 자기 병을 고쳐 줄 수 있는 선지자 엘리사를 알게 되어 아람 왕의 허락을 받아 엘리사가 있는 북이스라엘로 가게 되었다. 선지자 엘리사는 자신을 찾아온 나아만에게 밑의 사람을 통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면 병이 낫는다고 가르쳐 주었다. 나아만은 처음에 이 말을 듣고 화를 냈지만 설국 엘리사가 시킨 대로 했고, 이에 나아만의 문둥병이 고쳐졌다.

 

 '일곱 번' 하는 것이 나아만 장군의 책임 분담이었다. ‘7’은 완전한 숫자다. 끝까지 해야 한다. 나아만은 끝까지 행하는 책임을 다해서 병이 고침을 받았다.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 앞에 혼자 갔으면 자존심 때문에 시킨 대로 안 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이 시쳤는데 왜 안 하십니까? 다른 사람이

 시키면 안 해도 되죠. 하나님의 사람이 시켰으니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라를 위해서도 가셔서 나아야죠." 하는 따르는 사람의 말을 듣고 엘리사의 말대로 일곱 번 요단강에서 씻으니 살이 나아 버렸다(열왕기하 5:9-14). ,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이 엘리사를 통해 하시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책임을 다해서 병이 낫게 되었다.

 

(나아만 장군, 이미지출처:Daum)

 

가롯 유다

 가롯 유다도 처음에는 잘했다. 그런데 완전히 변화되지 않으니 자꾸 '육성''본성'이 튀어나와 변질되었다. 그래서 가롯 유다는 대제사장들에게 은 삼십을 주고 예수님을 팔았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후에 괴로워서 자살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의 사도였으나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결국 실패하고 끝났다.(마태복음 27:3-5)

 

세례 요한

 구약 때 하나님을 담대히 증거한 엘리야처럼, 신약 때에는 메시아를 증거할 자를 그 시대에서 뽑아서 보냈다. 그가 곧 세례 요한이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시원찮게 증거했고, 예수님을 제대로 몰라서 따르지 않았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올 때에 세례 요한은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예수님에게 임하심을 보았고 이로써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다.(요한복음 1:32-34)

 그러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확실히 깨닫지 못했다.(마태복음 11:2-3)

 

 결국, 세례 요한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데리고 자기 길로 갔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3년 동안 스스로 증거하며 역사를 폈다. 그러나 증거해야 할 자가 자기 길로 갔으니, 그로 인해 그 시대도 예수님을 더욱 몰라봤다. 결국, 성정을 억지로 푸는 구약인들과 예수님을 따르다가 불신하고 나간 자들로 인해 예수님은 십자가를 졌다. 세례 요한도 결국 목이 베여 죽임을 당했다. 이는 세례 요한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이다(마태복음 14:1-12).

 

▲ 세례 요한(필리프 드 샹파뉴, 1602-1674)[출처:Daum이미지]  

 

이 시대

 지금 이때 이루는 성약 섭리역사는 4,000년 구약 형벌 역사가 지나고, 신약 때 아들로서 복직하여 2,000년의 역사가 흐른 후, 구원역사 6,000년 만에 이루는 성약 신부의 역사요, 천지 창조 이래 137억 년 만에 이루는 창조 목적의 역사다. 신약에서 예언한 천년왕국의 역사다(요한계시록 20).

 

 삼위가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오직 사랑'이다. 신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 신과 함께 사는 육과 영의 삶이다. 이보다 더 큰 인간을 향한 신의 계획은 없다. 이 안에 구원도, 축복도, 이상의 삶도, 믿음도, 화평도, 인생이 원하는 것들도 다 들어 있다.

삼위의 사랑의 대상으로서 자격을 갖춘 인간으로 태어났어도 신부 시대인 성약역사를 만난 자가 최고로 복된 자이며, 성약역사 중에서도 창조 목적이 진행 중인 이때를 만난 자가 최고로 복된 자다. 고로 이때를 만나 성삼위를 100% 사랑하고 보낸 자를 통해 하시는 시대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책임을 다하여 휴거로 창조 목적을 이루는 자가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리는 자다.

 

<이사야 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     ©jsmagazine.net

 

2) 책임 분담의 원리

 

큰일은 하나님이 하시고 작은 일은 인간이 한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서 아모리 족속과 싸울 때 속히 이기기 위해 태양과 달이 멈추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에 하나님은 응답하사 큰 우박으로 아모리 족속의 군인들을 때렸다. 그래서 우박으로 죽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들보다 더욱 많았다. 결국, 시간의 표적이 일어났고 여호수아 군대가 승리했다. 이때 우박으로 아모리 족속을 때린 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큰일이었고, 남은 아모리 족속을 치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작은 일이었다.(여호수아 10:11-14)

이와 같이 만사가 그러하다. 큰일은 하나님이 하시고 작은 일은 인간이 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책임 분담의 비율

 90%는 하나님의 책임 분담이다. 10%가 인간의 책임 분담이다. 하나님께 90%의 책임 분담이 있으니 그런 하나님을 믿어드리고 인정해야 인간의 일에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세상에서도 친구가 조금 도와서 성공했다고 하고, 선배가 조금 도와서 성공했다고 하는데, 하물며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도우시면 얼마나 크게 성공하겠는가? 얼마나 엄청난 차이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도우시면 크게 된다.

 

하나님이 축복하셔도 인간이 책임을 해야 받는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할 일을 해야 받을 수 있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보면, 하나님이 축복을 그냥 선물 박스에 넣어 주듯이 준 것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항상 하나님이 주었으되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받게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13:44>

천국은 마치 발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구원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메시아를 보내 주셔도, 인간이 '믿는 책임'을 해야 구원을 받게 된다.(요한복음 3:16)

 

인간 책임 분담만 빼놓고 다 도우시는 하나님

 아기가 태 밖으로 나오면 본인이 숨을 쉬어야지 엄마가 대신 숨을 쉬어 줄 수 없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과 인간의 일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인간 책일 분담만 빼놓고 다 도우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사람의 책임 분담에 참여하지 않고, 사람도 또한 하나님의 책임 분담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자기 일에 충성함이 명철이며 지혜다.

 

책임 분담의 낙

 하나님께 맡겨 놓고 해 달라고만 할 필요가 없다. 같이 해야한다. 그래야 재미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책임 분담의 존재로 창조하셨으니, 사람도 같이 해야 재미있다. 어디에 가서 일할 때 놀라고 해서 하루 종일 가만히 있으면 재미가 없다. 같이 만들 때 재미있고, 같이 할 때 즐거운 낙을 누릴 수 있다. 일로만보지 말고 그것이 낙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마태복음 25:20-21)

 

인간의 책임 10%도 하나님이 간접적으로 역사를 하시는 경우

 모든 사건을 가만히 지켜보면 우연히 되는 것이 없다. 알고 보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감사를 빙빙 돌리면서 하면 안 된다. 감사를 할 때는 확실하게 감격 감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도우실 때, 자기를 통해서 돕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이 한 것으로 알기가 쉽지만 실상 90%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이고 10%가 자신의 책임 분담인 것이다. 그런데 그 10%도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크고 깊으면 하나님이 그것까지 간접적으로 역사를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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