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십자가의 진실[1]

jsmagazine.net | 기사입력 2024/04/02 [16:36]

[칼럼]십자가의 진실[1]

jsmagazine.net | 입력 : 2024/04/02 [16:36]

십자가의 진실[1]

 

1부 성경은 말한다 

 

JS매거진 편 집 부

 

 

제목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해야 한다. 함부로 진실이라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희생을 통한 구원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제 장성한 자녀는 부모의 속마음을 알아야 하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의 의미를 깊이 깨달을 때가 되었다.

 

(1) 십자가는 예정이 아니다.

 

일단 먼저 십자가 사건이 예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예정은 두 가지이다. ‘영광의 주고난의 주’.

완전히 상반된 길이지만 둘 다 이루셨다.

먼저 왜 극과 극으로 갈라지는 두 가지 예정을 동시에 예언하셨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 혼자서 창조 사역부터 구원까지 완성하신다면 선한 것만 이루시며 가시면 되지만 인간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악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둘 다 예정하실 수밖에 없다.

 

"하나님도 창조하신 목적을 스스로 이룰 수가 없다. 인간과 함께 이루는 것이다(정명석 목사, '200368일 새벽말씀')."

 

사랑은 혼자서 이루지 못한다. 창조 목적부터 인간을 상대체로 삼으셨기 때문에 함께 이루신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하나님께 속한 것은 스스로 첫 번째에 꼭 행하십니다. 그러나 약한 인간과 함께 행하는 것은 항상 인간이 준비가 안 되고 몰라서 첫 번째에 못 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여기서 끝내지 않으시고, 꼭 두 번째 기회를 주어 원통해하고 후회하고 안타까워하며 뼈저리게 깨닫게 하고 준비하게 하면서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연단하고 단련하여 목숨 다해 기필코 하게 하셨습니다(정명석 목사, '2016612일 주일말씀').”

 

완전한 사랑은 완전한 자유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만큼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이든 악이든 제약 없이 선택이 가능하다.

말씀을 주어도 그것을 따를지 따르지 않을지는 인간의 선택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악한 선택에 의한 결과도 예정하셨던 것이다.

 

▲ [영화 Passion of the Christ] 중에서     ©jsmagazine.net

 

(2) 고난의 주와 영광의 주

 

이사야서 53장은 고난의 주로서의 예언으로 대표적인 말씀이다. 마치 어머니가 자녀에게 너는 네 꿈을 이루며 아주 엄청나게 잘될 것이다. 하지만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배고프고 헐벗게 된다.”라고 교훈하듯이 대부분 영광의 주로서 예언을 말씀하셨지만 적은 수로 고난의 주로서 예언도 함께 성경에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예정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해서 성경 전반적인 흐름을 모두 살펴야 왜 사도 바울이 십자가의 도만 자랑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3) 모든 것은 세례 요한으로부터였다

 

기성 기존 기독교인들이 칭찬하는 세례 요한의 실체는 정반대이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명을 받아서 온 세례 요한은 자기 할 일을 하지 않고 세속 왕이었던 헤롯의 결혼 문제를 들춰내다가 왕비 헤로디아의 원한을 사서 목이 잘려 죽었다.

절대로 용감한 순교가 아니다.

사명 실패이다.

많은 기성 기독교 목회자들이 세례 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고 가르치지만 그 뒤에 바로 이어지는 말씀은 일부러 빼놓는 이해되지 않는 설교를 한다.

 

(마태복음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예수님의 말씀 전체를 보면 마지막 부분에서 그러나로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결국 세례 요한은 극히 작은 자보다 작다는 뜻이다.

이는 어떻게 보아도 칭찬이 아니다. 예수님의 원래 의도와 반대로 설교를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세례 요한이 마태복음 14장에서 죽은 뒤 마태복음 16장에서부터 <비로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마태복음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이 때로부터’, ‘비로소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그전에는 그렇게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세례 요한의 죽음이 초래한 결과 때문이다.

세례 요한 죽음 이후 예수님은 자칭 메시아로 전락하고 만다. 증거자가 죽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3:2)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세례 요한은 로마 군병들까지 와서 그에게 세례를 받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고 헤롯 왕도 백성들을 두려워해 함부로 죽이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런 자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하지 않고 다른 짓을 하다 죽어버린 것이 영광의 주에서 고난의 주로 뒤바뀌게 만든 근본 원인이다.

 

▲ 세례 요한(필리프 드 샹파뉴, 1602-1674)[출처:Daum이미지]    

 

(4)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로 가셔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그 말씀을 직접 들어봐야 한다.

 

(마가복음 12:1-8) 1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2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3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4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5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6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7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8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고 농부들은 유대인이다. 그리고 아들은 예수님이다.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하셨다. 처음부터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서 존대받을 것을 예정하고 오셨는데 죽인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심정이다.

 

▲     ©jsmagazine.net

 

(5) 가룟 유다에 대한 심정

 

(마태복음 26: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가룟 유다는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좋았을 것이라는 말씀은 가룟 유다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뜻대로 행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요한복음 19: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세례 요한의 증거 실패로 인해 스스로 그리스도가 된 자로 오해받는 시점에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지만 뜻은 아니기에 가룟 유다의 죄가 크다고 하신 것이다.

 

(6) 모세와 예수님

 

예수님은 모세 때의 일을 말씀하시며 당신께서 처하신 입장을 설명하셨다.

 

(요한복음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먼저 모세 때를 봐야 한다.

 

(민수기 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유대인들이 광야에서 모세를 불신하고 악평한 것은 뜻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이렇게 하신 것이 아니다. 그때 모세가 불뱀을 장대에 매달았듯이 예수님도 십자가에 들려야 할 것이라는 말씀은 그와 같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몰라보고 악평하니 그렇게라도 구원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모세가 뱀을 왜 들게 되었으냐면 유대 민족들이 불신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를 자꾸 안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의 대가로 불 뱀을 보내서 물게 했습니다. (중략) 모세 때 구리 뱀을 쳐다보고 믿은 사람들은 살았기에, 예수님 때도 십자가, 십자가 하는 것입니다. 결국 모세의 뱀을 상징한 구리 뱀을 들었듯이,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정명석 목사, ‘1998.10.17. 아침말씀’).”

 

예수님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심정이 이렇다.

 

▲ 느보산 정상 모세기념교회의 놋뱀 형상[출처:Pixabay]    

 

(7) 죄 사함의 권세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그 보혈로서 죄를 사함받는다는 논리는 성경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이미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피를 흘리시기 전에 죄 사함의 권세를 발휘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9: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했습니다. 죄 사함을 받으면 병이 나은 것입니다. 죄값으로 병이 난 것인데, 죄를 용서하니 병이 나은 것입니다. 유대인은 병이 오면 죄값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메시아는 죄사할 권세가 있다는 시범을 보이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이미 사건을 알고서 용서를 해주신 것입니다. 기성인들은 십자가 때문에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면서 '십자가 십자가 영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안 졌을 때부터 이렇게 죄를 사해주고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기성인은 십자가를 짊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죄 사함을 못 받았다는 것입니까?(정명석 목사, '1998620일 아침말씀)."

 

(누가복음 5:20)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이렇게 이미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행하셨다.

이미 말했듯이 세례 요한 죽음 이후 예수님의 말씀 방향도 다 돌아간 뒤에 최후의 성찬 자리에서 피로서 죄를 사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처음부터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2부에서는 사도 바울의 심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     ©jsmagazin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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