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진실[2]
2부 제자들은 왜 그랬을까 JS매거진 편 집 부
1부에서는 세례 요한의 죽음 이후 영광의 주에서 고난의 주로서 예정을 이룰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의 심정을 직접 들어보았다. 이번에는 왜 바울을 비롯하여 제자들이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할 수밖에 없다고 증거했는지 살펴볼 것이다.
(1) 이단의 우두머리
(사도행전 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바울이 벨릭스 총독 앞에 잡혀와서 더둘로가 고발하면서 말한 것이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는 죄명이었다. 결국 나사렛 출신이었던 예수님이 이단이라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의 인식은 예수님은 수두룩한 이단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사도행전 5:36-37) 36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드다도 있었고 갈릴리의 유다도 자칭 메시아로서 일어났다가 망했다. 예수님도 그렇게 일어났다가 십자가에 죽은 그들 중의 한 명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주로 오신 분임을 증거하는 방법은 구약의 예언을 이루신 분으로 증거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사야 53:4-5)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2) 화목제물 예수님
거기에 더하여서 모세 오경에서 구약의 제사법을 주목하기 시작한다. 속죄 제사의 화목제물로 예수님을 대비시킨다.
(레위기 3:6) 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제물이 양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드릴지며
(히브리서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브리서의 기자는 구약의 제사를 빌어서 흠 없는 양으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렸다고 하면서 성경적으로 근거를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예수님이 그저 이단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는 것을 밝혀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히브리서의 신학적 메시지는 이 시대에 그대로 계승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희생제사였습니다. 희생제사라는 말은 구약의 레위기에 나오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 사건은 죄인의 죄를 대신 속하는 제사, 즉 대속의 제사였다는 말입니다.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죄를 양이나 염소에게 안수하여 전가한 후 잡아 그 피를 지성소에 뿌려 죄 사함을 얻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우리를 위해 오셔서 우리 죄를 그분의 몸으로 다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서 그 몸으로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를 받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보혈을 흘려 주시고, 자신의 생명을 드리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겁니다(정성욱, ‘스피드 조직신학’).”
사도행전부터 시작해서 이미 십자가에 돌아가신 시점에서는 십자가의 도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3) 종교 개혁가 루터의 신학
개신교를 탄생시킨 종교개혁은 돈으로 구원을 살 수 있다는 면죄부를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처음부터 반박을 위한 논리였다. 루터는 구원의 방법에 대해 주목하였고 믿음으로 의인이 된다는 바울의 메시지에 집중한다.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루터의 입장에서는 돈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논리를 철저하게 부수기 위해서 성경적에서 근거를 찾아야 하다보니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해야 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전한 메시지들에 매달린 것이다.
(4) 루터 신학의 한계
루터는 자유의지를 철저하게 부인한다. 오직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구원을 강조한다. 이는 칼뱅에 의해서 더욱 강화되어 바울의 메시지를 기반으로 처음부터 구원받을 자와 그렇지 못할 자로 나뉘는 ‘선택 교리’를 구축하게 된다.
(디모데후서 2:10)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택함 받은 자들이 나온다. 이들은 귀히 쓸 그릇에 해당된다.
(로마서 9:21-23)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실제로 하나님은 처음부터 구원할 자와 구원받지 못하고 유기될 자들을 나누어서 태어나게 하셨을까? 진실로 이것이 사실일까. 하지만 위의 구절은 디모데에게 쓴 서신과 내용을 비교하면 올바른 이해가 가능하다.
(디모데후서 2:20-21)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처음 토기장이 비유가 제시된 로마서의 배경을 통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로마서는 로마 교회에 보낸 서신이다. 이 로마 교회는 유대인들보다 헬라인과 같은 이방인들이 훨씬 많았다. 사도 바울은 이미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시 말씀을 전하지 않는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서 15: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그런데 바울은 로마 교회에 어떻게든 자주 방문하려고 애쓴다.
(로마서 1: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이는 로마 교회가 유대인들보다 이방인들 출신 신자들이 많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로마 교회의 구성원들은 로마 제국의 다른 곳에 세워졌던 여타 초대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함께 섞여 있었다. 그런데 로마서를 통해 볼 때 로마교회의 경우에는 이방인들의 수효가 유대인들의 수보다 더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롬 1:13, 11;17-19](빛과 사랑교회, 송기흠, ‘로마서와 로마 교회’, 2016.3.14.).”
로마서는 이런 배경에서 쓰여진 편지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을 수없이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보니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와는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토기장이 비유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개의 토기장이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바울의 원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다.
(6) 루터와 칼뱅 신학의 영향력
지금의 기성 개신교 신학은 루터와 칼뱅의 신학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1618년부터 1619년까지 지속된 도르트 총회(Synod of Dort)는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이 항의서에서 제기한 5가지 신학적 문제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도르트 신경(Canons of Dort)을 채택하였다. (중략) 도르트 총회가 채택한 칼빈주의 5대교리는 1)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3)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4)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 교리를 가리킨다. 이 교리들은 각기 분리될 수 없는 유기적인 연관성을 지니고 있어서 개혁주의 구원론의 입장을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기독신문, 조현진 교수-한국성서대, ‘칼빈주의 5대교리, 개혁파 신학적 표준 제시하다’, 2018.10.4.).”
1618년 도르트 총회와 1643년 웨스트민스터 총회(Westminster Assembly of Divines)에서 기독교 중심교리로 채택되면서 도그마처럼 되어버렸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교리들은 십자가가 처음부터 예정된 것이라는 논리를 더욱 강화한다는 것이다. 루터로부터 시작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와 절대 예정에 대한 교리는 칼뱅을 통해 더욱 강화되어 십자가는 절대 예정된 것으로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7) 바울을 변명하다
이렇게 로마서와 같은 서신에서는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고 예정이며 그의 희생으로 인한 보혈로 구원 받는다는 교리를 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바울이 오직 그런 논리만을 전했을까.
(고린도전서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바울도 십자가 사건이 예정이 아니며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래는 영광의 주로 오시는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고 뜻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몰라서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나무에 달린 자는 십자가를 말한다. 그런 십자가는 저주라고 말한다. 바울도 역시 본래 뜻도 예정도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런 입장에서 바울이 십자가만을 자랑할 수밖에 없는 심정을 깨달아야 한다.
(갈라디아서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의 심정을 알아야 한다. 그 시점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라도 예수님을 증거해야 한다.
(8) 십자가 교리가 잘못 굳어진 이유
지금 기존 기성 개신교 신학자들은 세례 요한을 용감한 순교자로 뒤집어서 말하고 예수님의 심정도 숨기면서 바울이 왜 그렇게 십자가만을 자랑한다고 했는지 전체적으로 보지 않는다. 루터 역시 당시에는 면죄부 교리를 깨뜨리기 위해서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으며 칼뱅은 아예 더 나아가서 처음부터 구원받을 자와 구원에서 배제되어 유기될 자가 정해져 있다는 교리로 면죄부를 반박했을 뿐이다. 단지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강하게 말한 것이 지금 개신교의 중심 교리로 굳어진 것이다.
(9) 예언은 모두 이루어졌다
영광의 주, 고난의 주 모든 예언이 다 이루어졌다.
"1. <하나님의 양면 창조, 양면 존재 세계>다. (중략) 5. 성경에도 ‘양면성 예언’을 했다. <주>가 오면 ‘고난의 주’와 ‘영광의 주’로 온다고 했다. 때로는 고난도 받고, 영광도 받는다고 했다. 그 예언대로 됐다(정명석 목사, '2018년 3월 13일 새벽잠언')."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믿고 따른 자들에게는 영광의 주로서 오셨고 십자가로 죽인 입장에서는 고난의 주로서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본 것이다. 지금 우리는 두 가지 예언을 모두 이룬 예수님을 바라봐야 한다. 고난의 주로서의 예언만 이루신 것이 아니다. 세례 요한을 향한 예수님의 안타까운 심정과 그렇게라도 죄를 대속하시며 모든 고통을 끝까지 감내하셨던 분임을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 처음부터 죽기 위해서 오셔서 그의 십자가 보혈로만 구원받았을 수 있다는 고백은 심정에 맞지 않는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드려야 한다. 십자가에 계속 계셔야만 내가 구원받는다는 교리는 이제 내려놓자.
“예수님은 죽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예정’이 아니었다. 살아서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뤄야 했으나, 기다리던 자들이 모르고 죽인 것이었다. 그냥 두면 다 멸망이니, 하나님은 모두 살리고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의 길로 내주신 것이다(정명석 목사, ‘2016년 6월 12일 주일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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