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칼럼]절대 예정, 상대 예정
[JS매거진 편집부] 과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예정해 놓으셨는가? 기독교 교리 중에는 ‘인간의 구원은 신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으며, 신은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가 미리 정한 바를 실현시켜 나간다’라는 예정론이라는 교리가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운명을 절대 예정해 놓으셨다면 하나님께서 다 해주실 것인데 무엇 하러 인간이 노력하고 수고를 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절대예정은 자유의지와도 모순되는 것이다. 인간은 값없이 모든 것을 얻을 것이므로 귀한 것도 모르고 교만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간의 책임분담만으로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 또한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므로 모순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 절대예정과 상대예정 양면을 모두 예정해 두셨다. 하나님에 대한 것은 절대예정이고, 인간에 대한 것은 책임에 의한 상대예정이다. 상대예정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이라도 인간이 행하면 이루어지고 행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상대예정이다.
하나님께서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해 시대 사명자를 보내어 구원의 역사를 펴신다는 것이 절대예정이라면,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시대 사명자가 이 땅에 와서 구원역사를 펼칠 때 구원자를 믿고 말씀을 깨닫고 실천하면 구원을 받지만 사명자를 만나고도 깨닫지 못하고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상대예정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절대예정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절대예정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실현되고 나타나는가를 아는 것은 상대예정이다. 책임분담을 통해 인간이 행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크기가 크게 나타나는 사람도 있고 작게 나타나거나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각자가 행한 만큼 받을 수 있고 알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도 기도해야 그 뜻을 제대로 깨닫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행하니 억지로나 싫어서 행치 않게 된다. 예정됐는데 뭣 하러 기도하냐? 하지 말고 예정됐어도 기도하여 하나님이 왜 예정하셨는지를 깨달아라.” 말씀하셨다.
인간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사망길과 생명길만 정해 놓으셨을 뿐 그 길을 선택하고 가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따라서 운명은 자기가 선택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좋게 되는 것, 선한 것만 예정해 두셨기 때문에 자신이 행함에 따라 좋은 쪽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책임분담 하는 것이 권세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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