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랜 토리노 다르게 보기>
JS매거진 편 집 부
오래전 서부 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주연의 영화다. 영화의 제목인 ‘그랜 토리노’Gran Torino는 1972년 형 명품 승용차 이름이다. 많은 평론에서 이 영화에 대해 '인종차별이다',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는 식으로 비판한다. 우리는 그런 관점에서 벗어나 지도자로서 갖춰야할 솔선수범의 모범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한다.
(1) 베테랑
전쟁 참전용사를 '베테랑(veteran)'이라고 부른다. 주인공 할아버지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 분)는 한국 6.25전쟁 재향 군인이다. 그의 삶은 단지 인종차별주의자로 고리타분한 외톨이의 삶이 아니었다. 그를 끊임없이 찾아오는 신부님께 던지는 질문들은 쉽게 한마디로 답할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월트] (나는 자네가) 할머니들 손이나 잡고 영생 약속 남발한다고 보네."
그 할아버지 참전용사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막 신부가 된 27세 천주교 성직자에게 했던 말이다.
"[월트] 삶과 죽음에 대해 뭘 아는가? 신학교 교과서에 실린 내용을 말이지."
그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 전혀 동떨어진 질문이 아니다. 그의 죽음은 예수님의 희생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물론 폐암에 걸려 곧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마지막 한 시간이라도 더 살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인데도 그는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꺼이 희생하는 모습을 실천하였다.
(2)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답
과연 누가 삶과 죽음에 대한 답을 명쾌하게 할 수 있을까.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누구도 자신 있게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월트] 한국에서 3년 동안 그 속(6.25 전쟁)에서 살았으니 사람을 사살하고 총검으로 찌르고 17살짜리를 삽으로 쳐 죽였네."
전쟁터에서는 죽이지 않으면 죽게 되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게 된다. 군복만 벗으면 가족 품이 그리운 평범한 인간이다. 한국인에게 전쟁은 6.25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쟁터도 있었다.
"'인생들이 전쟁하며 싸우면서 서로 죽이는구나. 전쟁터에서 상대는 죄가 있으나 없으나 서로 다 죽이니 참 어이없다.’ 하고, 억울한 죽음임을 깨달았다. 한자리에서 수백 명씩 죽는 것을 보고 ‘처참하고, 인생 허무하구나.’ 했다. 그리고 며칠 안 지나서 죽은 시체들을 묻어 주러 가서 보니, 구더기가 몇 바가지씩 있고, 시체가 썩어 없어지고 있었다. ‘육은 허무하다. 아무것도 아니다. 인생의 무엇이 남냐.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과 주를 믿고 구원받아 영이 영원토록 살아야 한다.’라고 깨달았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정말 절실하게 깨닫게 해 주셔서 눈물로 기도해 주었다. 나도 이같이 죽을 수 있는데 살아간다니 절대 믿을 수밖에 없었다(정명석 목사, 2023년 11월 5일 주일 말씀)."
죽음의 경계선에서 살아돌아온 사람만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월남에 있을 때 그 처참한 것을 보고서 나는 인생의 허무를 정말로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많이 죽을 때는 내 앞에서 230명이 죽었습니다. 그 처참한 것을 보고 너무 놀라지 않았겠습니까. 그때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사람도 생기게 되고 불면증이 생겨 잠을 못 자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그 싱싱한 군인들이 그랬습니다. (중략) 제네바 협정에서 그것을 묻어 주라고 했지않습니까. 그런데 한 일주일 있다가 가보니까 막 썩어 있었습니다. 날씨가 37도 38도가 되니까 푹푹 썩어서 시체에 구더기가 몇 되씩이나 생겼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 시체에서 생긴 구더기를 보니까 살이 너무 쪄 있었습니다(정명석 목사, '2004년 5월 16일 주일말씀')."
살기 위해 죽였던 전우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을 겪었다.
"내가 월남에 있을 때 사람이 죽은 지 일주일 뒤에 가보니까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그 사람이 도망갔나? 죽었는데 도망갔나? 이상하다.' 하고 보니까 구더기만 두어 마리 있더라구요. '사람은 어디 가고 구더기만 있나? 이상하다.'하고 살펴보니 벌써 썩어서 구더기가 바글바글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시체 속에 구더기가 하도 많으니까 뼈를 다 덮어서 구더기인지 뼈인지 잘 안보였습니다. 그렇게 바싹 썩었더라구요. 그걸 보고서 '무섭다 무서워. 사람이 이렇게 허무하게 변하는구나. 나도 죽으면 구더기로 변하겠구나. 죽어서 흙으로 변한 사람은 그래도 행복하다고 하겠구나. 전쟁터에서 구더기로 변하면 안되겠구나.'했습니다(정명석 목사, '1994년 3월 6일 주일말씀')."
방금전까지 열대 우림을 번뜩 날고 기던 베트콩들이 시체가 되어 썩어 가는 모습을 보며 허망함을 느꼈을 것이다.
(3) 그가 혼자 가는 이유
월트 코왈스키는 불량배들이 시켜서 그의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 했던 몽족(Hmong, 한국인과 관련이 많음. 편주) 이민 가정 소년과 만나게 된다. 남의 일에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던 외골수였지만 소년과 그의 가족들이 겪는 차별과 폭력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소년이 당하는 고통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의 친누나는 폭력배들에게 성폭력까지 당하고 만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소년도 신부도 그를 막지 못했다.
"[월트] 한국에서 총을 쏘고 칼로 찌르고 베고, 나중에는 삽까지 들고 어린놈들과 싸웠지. 나는 이미 피를 묻힌 사람이야. 나는 죄를 지었어. (중략) 난 이미 더럽혀졌으니까. 그게 바로 내가 혼자 가는 이유다. 이제 넌 네 인생을 살아라. 난 끝내야 할 것이 있어.”
그는 폭력을 끝내려는 것일까 그의 고통을 끝내려는 것일까.
"[월트] 사람을 죽이는 일이 어떤지 알고 싶어? 정말 끔찍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어. 더 끔찍한 일은 사람을 죽였다고 훈장 받는 일이야. 더 이상 싸울 힘도 없는 어린놈들을 죽이고서 말이지. 너처럼 겁에 질린 한국인들을 말이야. 네가 조금 전에 들었던 그 소총으로 얼굴에 총을 쏘았지. 그 일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 누구도 그런 일을 겪으면 안 돼."
적을 죽였기에 살아남았지만 살아도 산 것이었을까.
(4) 적을 살리러 간 자
이런 전쟁터에 적을 살리러 간 사람이 있다.
"아무리 전쟁터지만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으면서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며 살겠다고 나를 구원하시는 자에게 어렸을 때부터 기도하며 약속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내가 저들을 죽인다는 것은 너무도 양심에 가책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중략) 전쟁터에서 적을 죽이면 기껏해야 녹슨 훈장 하나 달게 되지만 하나님 앞에는 훈장은 고사하고 살인자 취급을 받고 그 행한 대로 받게 됨을 생각할 때 두렵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적을 죽이면 용감하다고 상관과 전우들에게 칭찬을 듣고 위로부터 포상을 받고 사회에 나와서도 이야깃거리가 되겠지만 하나님에게는 심판 거리가 되어 후대에까지 피를 흘리게 한 살인자의 명패를 받아 지울래야 지울 수 없게 됩니다(정명석 목사, '2003년 1월 26일 주일말씀')."
정명석 총재가 월남 전쟁터에 1960년대에 파병되었다가 귀국 후 자발적으로 다시 참전한 이유는 통역을 해주어 포로로 잡힌 적을 살려보겠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두 번의 파병을 겪으면서 무공 훈장 6개를 받았다.
"여기 있는 이 사람은 30번 이상 도대체 살 수 없는 세계를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 내가 생명의 가치성을 느끼므로 빠져나왔습니다. 사람이 월남전에서 남을 죽여야 훈장을 타니까 남을 죽여서 훈장을 타려고만 했지 자기가 죽을 줄을 몰랐습니다. 훈장을 타면 평생 동안 엄청나니까 그렇습니다. 그런 바보가 어디 있습니까? 남을 죽이고 훈장을 타려고 하다가 자기가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나는 화랑무공훈장 3개, 인헌 훈장 3개 해서 훈장을 여섯개 탔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을 죽여서 타지 않았습니다. 훈장이라는 것은 사람을 죽인 표시가 아닙니까? 그러나 나는 사람을 살리고 훈장을 탔습니다(정명석 목사, '1997년 3월 9일 주일예배')."
정명석 총재는 적을 죽이지 않고 뛰어가서 껴안거나 생포하여 포로로 잡아서 정보를 얻어 오히려 더 많은 노획물을 얻고 적의 대대급 작전 정보를 얻어 아군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홍길동 작전도 우리가 했습니다. 나와 소대장이 최고 많은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 작전을 육사에서도 배운답니다. 그런데 내가 한 것을 모릅니다. 내가 포로 잡았는데 그 사람이 불어서 엄청난 전과를 올리게 했습니다. 그 사람을 죽였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 적이 바로 대대장 전령을 했었는데 그 정도면 웬만한 비밀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역사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정명석 목사, '1997년 3월 17일 아침말씀')."
정명석 총재는 당시 백마 9사단 도깨비 28연대 1대대 3중대에 복무하였다.
"이날의 작전을 기록한 <전투상보>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대대는 오전 중 접전이 없이 계속 수색 중 14:15에 3중대가 동굴에서 30명을 사살하고 57미리 무반동총 1정, 82미리 박격포 1문(이하 생략), 포로 1명과 많은 통신 기재를 포획하여 홍길동 작전 기간 중 최대의 전과를 획득하였다.'(만남과 대화, '정명석 목사와 베트남 전쟁 part.02', 2022.7.18)."
특이한 점은 정명석 목사가 복무했던 3중대의 실적에 대해 이례적으로 강조하여 기록한 것이다.
"백마부대는 대대급 이상 대부대 작전만 474회를 실시했기에 <전투상보>는 통상 연대급 이상의 작전이나 대대급 작전 중에서도 특이할 만한 작전 위주로 작성됐으며, 실제 전투상보에 기록된 백마부대의 작전은 수십 개에 불과하다. 그런데 홍길동 작전 중 특별히 28연대 1대대 3중대의 전과를 자세히 소개하며 '홍길동 작전 기간 중 최대의 전과를 획득하였다'라고 기록한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다. 당시 3중대 1소대가 기습하여 무찌른 부대가 북베트남 정규군인 95연대 본부였고, 연대 본부가 궤멸되면서 홍길동 작전은 대성공을 거뒀기에 3중대가 이 작전에 참가한 맹호부대와 백마부대의 약 80개 중대 중에서 최고의 전과를 세웠다고 기록한 것이다(만남과 대화, '정명석 목사와 베트남 전쟁 part.02', 2022.7.18)."
다른 전우들은 많은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고 그 당시의 상황이 계속 떠올라 트라우마로 남았지만 정명석 총재는 오히려 사람을 살려서 살아나게 되었으니 그런 정신적 고통이 아닌 생명을 살리고 살게 된 간증만 남았다고 한다.
(5) 실천적인 삶
월트 코왈스키는 왜 예수님 같은 희생으로 마감하였을까. 물론 폐암 환자였다. 불량배들의 총에 희생되지 않았어도 그는 얼마 살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었다. 이에 대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다는 비판을 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도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십자가에 달릴 것을 알고 계셨지 않는가. 그는 오히려 가장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최후를 맞았다. 자신의 동양인 이웃 가족들을 괴롭히는 불량배들에게 가서 집중적으로 총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았다. 물론 그에게는 어떤 무기도 없었다. 총성을 듣고 주변 이웃들이 몰려나와 목격자가 되었고 갱단은 빠져나갈 수도 없이 현행범으로 경찰에 연행되었다.
그의 희생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것이 진정 예수님을 닮은 방법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으로서 대속하셨지만 코왈스키는 성직자를 비꼬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도 하기 힘든 실천적 삶을 살았다고 봐야 한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을 가장 잘 지킨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월트는 신에 대해 냉소적으로 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앞서서 실천적인 신앙의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이 먼저 실천하고 그 실천 결과를 가르치는 성경 교사는 많지 않다.
(6) 행한 것을 가르치는 지도자
"‘행하는 신앙’이 살아 있는 신앙입니다. 행하라고 환난이 일어납니다. 안 해 놓고 되기만을 원하면, 되지 않습니다. 실천 신앙이 살아 있는 신앙입니다. 기도, 말씀, 전도, 증거, 가르쳐 주기를 행하며 삶의 터전에서 뛰고 달려야 됩니다(정명석 목사, '2023년 12월 17일 주일말씀')."
참전용사 월트는 실천하고 곧바로 죽음을 맞았으므로 그 결과를 누군가에게 직접 가르칠 수는 없겠지만 그의 행동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의 삶은 전쟁 후유증으로 차고 속에 틀어박힌 그의 애장 승용차 그랜 토리노와 함께 내면 깊이 숨어버렸고 차를 소년에게 유산으로 남겨주면서 그의 희생은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실천으로 연결되지 않는 가르침은 빛을 잃는다. 죽음의 경계선에 수없이 몰렸던 자만이 삶과 죽음을 논할 수 있다. 실천하고 직접 경험으로 체득하여 가르치는 말씀은 실제로 이루었기에 힘이 있다.
"이미 행한 것을 말을 한다는 거여, 행하지 않은 것을 하면 헛일이여. 행한 것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끄덕끄덕 하시죠. 행한 것 하니까(정명석 목사, '2022년 1월 4일 하나님의 날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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