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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숨결속으로]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야
르호보암을 이어 남유다의 왕이 된 아비야는 르호보암의 장남이 아니었습니다. 역대기하 11:18-23에 의하면, 아비야는 르호보암의 둘째 부인 마아카의 아들이어서 그의 위로 세 명의 배다른 형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마아카를 가장 사랑했기에, 아비야에게 왕위를 물려주고자 그를 그의 형제들 가운데 으뜸으로 세우고, 그의 형제들을 예후다와 빈야민의 요새 성읍들에서 머물게 하고 그들에게 양식을 많이 주고 아내들도 많이 구해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이 가장 사랑한 마아카는 우상을 숭배하던 여자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열왕기상 15:13은 아비야의 아들 아사가 “아셰라를 위하여 ‘끔찍한 것’을 만든 자기 할머니 마아카도 대비(의 자리)에서 제거했다. 그리고 그녀의 ‘끔찍한 것’을 잘라 내어, 키드론 골짜기에서 (불에) 태웠다”고 하였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던 말 그대로 ‘끔찍한 여자’였던 것이지요. 아비야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 아비야에 관하여 열왕기상 15:3은 “그는 그의 아버지가 그보다 먼저 저지른 모든 죄를 따라 걸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은 자기 조상 다뷔드의 마음처럼 여호와님 곧 자신의 전능하신 분 곁에서 완전하지 못하였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만) 전능하신 분께서는 다뷔드를 위하여, 그의 뒤에 그의 아들을 일으키시고 예루샬렘을 세워 주시려고, 예루샬렘에서 그에게 등잔을 주신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비야의 통치기간은 불과 3년이었기에, 역대기하 15:1에 등장하는 대언자 아자르야후가 아비야와 동시대의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과 르호보암과 아비야에 관한 기록을 남긴 대언자 잇도 역시 아비야 시대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보입니다.(역대기하 9:29,12:15,13:22)
(여로보암과 아비야의 전투 / 이미지, Daum)
그래서 이들 대언자들이 아비야를 음으로 양으로 도왔기 때문인지, 여로보암이 80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남유다를 침공했을 때, 아비야는 담대한 마음으로 이들에게 맞서며 역대기하 13:4 이하에서 이렇게 훈계했습니다. “야로브암과 온 이스라엘은 내 (말)을 들어라. 여호와님 곧 이스라엘의 전능하신 분께서 소금 계약(으로) 다뷔드님과 그분의 자손들에게 이스라엘 위에서 (다스릴) 왕권을 영원히 주신 것을 너희가 알지 않느냐?”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여호와님께서 우리 전능하신 분이시기에, 그분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여호와님을 시중하는 제사장들은 아하론의 자손들이며, 레뷔인들이 작업을 (돕는다). 그래서 그들은 아침마다 저녁마다 여호와님께 번제물과 향기로운 향을 사르고, 순(금) 탁자 위에 (두) 줄(의) 빵을 (안식일마다 올리며), 금 등잔대와 그것의 등잔들을 저녁마다 켠다. 이렇게 우리는 여호와님 곧 우리 전능하신 분의 주의사항을 지키지만, 너희는 그분을 저버렸다” 하며 여로보암의 그릇된 종교정책을 지적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날의 전투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굴복하고 예후다 자손들이 강하였는데, 이는 이들이 여호와님 곧 자기들 조상들의 전능하신 분께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비야는 야로브암의 뒤를 쫓아가서, 그의 성읍들, 곧 베트엘과 그곳에 딸린 촌락들, 예샤나와 그곳에 딸린 촌락들, 에프론과 그곳에 딸린 촌락들을 빼앗았다. 그러고 나서 야로브암은 아비야 시대에 다시 힘을 채우지 못하였고, 여호와님께서 그를 치시니 죽었다. 그러나 아비야는 굳세어졌다”고 하였습니다.
르호보암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으면서도 끝까지 우상을 섬기다가 자기 손자 아사에 의하여 대비 자리에서 폐위 당하게 되는 여자 마아카의 아들로 태어나 왕위에 올라, 열왕기 기자에게서 “그의 마음은 자기 조상 다뷔드의 마음처럼 여호와님 곧 자신의 전능하신 분 곁에서 완전하지 못하였다”하는 평가를 받기도 한 아비야는 점차 이러한 전능하신 분의 도움을 체험하면서 ‘여호와님 중심 신앙’을 회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비야는 자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여 끝내 그녀의 우상숭배 문제를 정리하지 못하여서인지, 아니면 갑작스러운 불치의 병을 앓아서였는지,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아비야가 그의 아버지 르호보암이 이미 세 명의 아들을 낳고 나서 둘째 부인을 얻어서 낳은 아들이고, 르호보암이 57세 무렵(열왕기상 14:21)에 죽은 뒤로 3년 만에 죽은 것이니, 불과 30대 초중반의 나이에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처럼 남유다에서 아비야의 ‘여호와님 중심 신앙’이 회복되는 추세 가운데 그의 아들 아사가 왕위에 올랐기에, 아마도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을 아사를 대언자 아자르야후 등이 보필하며 아사 시대의 종교개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홍정기 작가 약력]
캠퍼스중앙사무국 교육국장 섭리신학 교수 아가페전도단 교육국장 현) 성서번역 및 성서신학 연구 (칼럼 관련 문의는 카톡 ID/acoj2045) <저작권자 ⓒ 제이에스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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